명사특강1 - 정운찬 (前 국무총리)

정운찬입니다. 여러분! 오늘 만나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불러주신 이동관 총장님을 비롯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보고 오라고 그러셔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겠다고 했어요. 아까 이총장님께서 잠깐 말씀하셨지만, 저하고 이총장님은 과는 다르지만 제가 서울대학 선배입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계실 때 저에 대해 보도를 잘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고, 또 제가 정부에서 일할 때 저는 총리실에서 또 이동관 총장님은 청와대에서 일을 했는데 서로 협조가 잘 됐었기 때문에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라고 그래서 오게 됐는데, 어휴 대답하고 나서 금방 후회를 했어요. 왜 후회를 했냐면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저희 어머니가 제가 어릴 때 저한테 주신 교훈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밥 먹을 때 손에 닿지 않는 음식은 먹으려고 말게나.”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우리 집 밥상에 손에 닿지 않는 반찬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마 나중에 잘 살 경우를 대비해서 가르쳐 주신 거 같고, 두 번째로 “혹시 잔치 집에서 부르더라도 세 번 이상 간곡하게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한 번 오라고 그랬는데 그냥 와버렸어요. 제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도 정부에서 일하라고 했었습니다만 그때마다 준비가 안됐다고 안 갔는데,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우리 어머니가 세 번 이상 간곡하게 오랄 때만 가라고 그러셨는데, 메신저들이 두 번 이상이 안돼요. 근데 이명박 정부 때는 여러 차례 오라 그래서 그냥 할 수 없이 가게 됐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근데, 또 하나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하고는 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우선 음악도 못하고 잘하는 것이 없거든요. 문화, 예술, 체육 부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기 와서 무슨 말을 하나 걱정이 됐기 때문에 후회를 했다.

이런 말씀이죠. 제가 제일 못 하는게 음악이에요. 어릴 때 정말 칭찬해주고 가르쳐야하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됐을 때입니다만 연합고사라는 걸 봐야하는데 국어, 산수, 사생, 자연, 음악을 봤습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온 사람들이 그냥 지정곡을 하나 주고 부르라고 그러는데 그때 지정곡이 제목도 잊어버렸습니다만 여러분 혹시 우리 어릴 때 배운 “나무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 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 같이” 이런 노래 있죠?

갑자기 부르라는데 불러 본 적도 없고 또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물론 악보도 잘 읽을 줄 모르고 그래서 60점 받았어요. 학교에서 굉장히 저를 실망했던 것 같은데 제가 국산사자는 괜찮게 하니까 음악까지 해서 서울시에서 좋은 성적일 줄 알았는데, 음악 60점 받아가지고 좋은 성적이 되겠습니까? 그 일이 첫 번째 음악에 대한 콤플렉스 시작이고, 두 번째는 중학교 왔는데 역시 중 1때 중간고사를 본다 그러면서 미리 가르쳐줬어요.

 

오낼리보이를 부르라고 제가 무슨 재주로 그걸 부르겠습니까. 무슨 영어학과입니까? 악보를 읽을 줄 압니까? 또 60점이에요. 중1, 중2, 중3, 고1, 고2, 5년 동안 음악을 했는데 노래를 못하니까 항상 60점, 청음도 괜찮게 해서 청음까지 볼 때는 한 75점 노래만 할 때는 60점해서 중1부터 고2까지 한 번도 일등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음악 때문에 평균 2점 깎이니까 1등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 음악은 그랬어도 미술은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나중에 서울여대 교수로 가신 최경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분은 한 학기에 사생, 사생이란 거 아시죠? 사생 한번만 시키시고 미술사를 가르치셨습니다. 중1부터 그래서 고2까지 5년 동안 미술사 괜찮게 배웠어요. 그래서 미국에 가 있을 때 대학원으로 유학 갔습니다만 학부 과목 중에 introduction to artistry란 과목 들었는데 최경한 선생님한테 배운 거랑 큰 차이가 없어서 아! 내가 미술사는 어릴 때 좀 배워서 생활에 도움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적이 있었으나, 다른 것도 못해요. 제가 잘 알려진 야구광이죠? 야구를 좋아하지 잘하지는 못합니다.

하여튼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데 오늘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 오게 되니 부담이 됐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까 이동관 총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에 살려면 문화예술부분에서도 또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이런 것 좀 알아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동반성장은 우리 사회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관한 말씀을 드리면서 동반성장에 대한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오늘 강의를)언제까지 해야 되냐고 아까 여쭤봤더니 아무 때까지나 하라고 그러시던데, 제가 끝낼 때까지 계세요. 괜찮으세요? 못 계시겠으면 가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우선 이런 유인물 안 받으셨죠? 그럼 제가 제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제 지금 동반성장의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남지방에 가서는 동반성장의 포교사라고 그러고 호남지방에 가서는 동반성장의 전도사라 그러죠.
영남은 불교가 세고 호남은 기독교가 세기 때문에 불교 지역 가서는 포교사, 기독교지역가서는 전도사 이렇게 하고 다니는데, 동반성장 언제부터 생긴 거냐?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반성장은 무엇이냐? 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동반성장은 뭐냐, 동반성장 하면 뭐가 좋으냐, 다시 말해서 동반성장 왜 필요하냐, 제가 왜 동반성장에 관심을 갖게 됐냐, 지금 동반성장 잘되고 있느냐를 간단하게, 짧게 말씀드리고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하시면 성실하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동반성장에 관한 질문을 하셔도 좋고 다른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이동관 총장님 기자 때 잘하셨나? 이런 질문도 괜찮고 아무거나 질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제가 정부에서 일할 때가 2010년 5월쯤 됐을 텐데 평소에 잘 알던 중소기업인. 아주 엄밀하게 말하면 중견기업인 일거에요.


매출이 칠천억 팔천억 하는 중견기업인이 총리실에 찾아와서는 “이민 가겠다.”고 그러대요. “왜 그러시냐?” 그랬더니 “해도 너무해서 그렇다.” “뭘 너무합니까?” 그랬더니 “납품가 후려치기를 너무해서 이민 가겠다.”고 그래서, 아는 사람이니까 농담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가십시오. 재산 많다고 들었습니다.

재산관리를 제가 안 계시는 동안에 해드릴 테니까 십 년 후에 오셔서 재산이 남으면 같이 나눠같고 모 마이너스가 되면 책임을 사장님이 지십시오.” 했더니 아이, 이런 농담이 어디 있습니까! 해버렸는데, 근데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좀 미안하데요. 너무 성의 없이 대답한 거 같아서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에 총리실가서 직원들한테 “한번 실상을 조사해보라.” 그랬더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해서 하는 불공정 거래가 여러 가지 있지 않겠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에 물품 주문할 때 서면 주문 안하고 구두 주문해서 열 개 주문해서 열 개 만들어 가면 여덟 개 주문했는데 이런 경우가 많아요. 그 다음에 돈을 현금으로 안주는건 물론이려니와 어음결제를 장기어음결제 하는 경우도 많고, 또 기술탈취라고 대기업에서 무슨 물건에 관심 있는데 만들 수 있는 사람 설계도 가지고 오십시오. 해서 설계도 갖고 오면 두고 가라고 그러고 2~3개월 후에 보면 그거보다 조금 고쳐서 그게 대기업 것인 냥 하는 게 있는 게 기술탈취라 그럽니다. 그 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납품가 후려치기라는 게 있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전자건 현대자동차건 LG전자건 다들 일사분기에 한 번씩 납품가 인하를 하지요. 그러니까 100원 같은 거 80원 합시다! 그러면 그거 안 됩니다.

 

그러면 90원으로 타협도 되고 이런 식으로 해서 불공정거래행위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우리가 경제위기를 맞았던 1997, 1998년까지는 참을 만 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참을 정도가 아닌 것으로 악화됐다는 보고서였어요.
그래서 왜 그때하고 다르냐? 그랬더니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550억 달러 받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걸 갚으려면 외환이 필요하다. 외환은 수출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수출하려면 물건이 좋거나 값이 싸야 된다. 물건을 좋게 만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가격경쟁을 한번하자 가격 경제라는 것이 원가 절감 아니겠습니까? 원가 절감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만한 게 없어요! 수도 값을 쉽게 내릴 수가 있습니까? 전기 값을 쉽게 내릴 수 있어요? 이자율을 내릴 수 있어요? 환율을 올릴 수가 있어요? 임금 한번 올라가면 안내려가거든요.

그러니까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받을 때 납품 값 후려쳐 갔고, 원가 절감을 하면 수출단가가 낮아지고 수출이 많이 되고 외환을 얻고 그러면 IMF으로부터 꾼 돈 값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눈감아 주기 시작한 것이 2010년 그때까지 계속 됐다는 거고 2010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불공정거래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님한테 면담 신청을 해서 갔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이것이 계속 된다면 한국경제가 약해짐은 물론 이려니와 잘못하다가는 사회가 불안하고 파탄이 날수도 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우리 이총장님도 아시지만 이명박 대통령께서 자존심이 강하셔서 모르겠어요? 저한테 그랬는데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아 당신 아이디어 참 좋다는 말씀 안하시고 아이디어 참 잘 살리는 분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얼마 전에 이총장님한테도 여쭤봤더니 그때 수석 하시던 이 수석님에게 대통령께서 한번 조사해보라고 말씀하시고 조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다가 6월 달에 세종시 수정안을 저희들이 냈는데 국회에서 부결 됐잖아요.

그래서 ‘대통령한테 프리핸드를 준다.’ 명목으로 제가 9월 달에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그해에 9월 30일경에 동반성장 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이 발표됐고 12월 13일에 동반성장 위원회가 발족 됐습니다.
저보고 위원장 하라 그래서 싫다 대학 졸업한 다음에 3~4개월 놀기 처음인데 노니 편하진 않지만 좋긴 좋더라! 그랬더니 당신이 발제해 놓고 안할 수 있냐?

그래서 할 수 없이 동반성장 위원장 맡아서 한 1년 4개월 동안 열심히 일했어요. 일생에 가장 열심히 일했고 또 욕도 제일 많이 먹었고 그러나 보람 있는 1년 4~5개월 이었었는데 아무래도 보니까 그 규모 갖고는 동반성장 제대로 안될 거 같아서 또 동반성장 위원장으로써 대통령한테 면담을 신청을 했고 “대통령님 인력과 예산을 두 배로 늘려주셔야 됩니다.” 아무말씀도 안하시데요? 더 큰 목소리로 “대통령님 인력과 예산을 두 배로 늘려주셔야 됩니다! 그것도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두 배 이상 어떻게 늘릴 수 있겠습니까?” 또 아무말씀도 안하셔서 그만두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서 관둬버렸어요. 근데 조금 이따 말씀 드리겠지만 저는 어릴 때 특히 대학갈 때 그 당시 동반성장이란 단어는 안 썼지만 동반성장하면서 참으라고 말씀해주셔서 그걸 유훈으로 삼아 왔는데 너무 무책임하게 동반성장위원을 그만 둔거 같아서 그해 2012년 6월에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3년여 동안 하고 있습니다.

이게 동반성장이라는 어휘라 그럴까 용어의 역사라면 역사라 말씀드릴 수가 있죠. 그러면 동반성장이 뭐냐 이렇게 질문들을 하는데 동반성장은 아까 잠깐 말씀드렸지만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근데 사람들이 더불어 성장은 좋은데 함께 나눠? 이제 그것들로 트집을 잡는 거죠. 함께 나눈다니까 있는 사람들에게 뺏어서 없는 사람한테 준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매스컴 스트레이트 보도도 있고 초청 칼럼도 있고 사설도 있어요.

사설에 제가 정말 나쁜 일로 사설을 통해서 유명해졌습니다. 거기에 어떤 게 나왔냐면 정운찬이 정치적 야심에 중소기업 특허법정 선정을 무리하다가 성급하게 향하는 바람에 중소기업이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국기업 예를 들어 필립스 코리아만 덕을 본다! 이런 보도도 있어요. 여러 번 나왔어요. 그래 갖고 제가 사실 걱정이 돼서 필립스 코리아 사장한테 LED조명 등 같은 거 만들어서 팔지는 마십시오.

그분이 저한테 뭐라고 그랬냐면 핵심기술과 관련된 건 몰라도 우리가 그래도 필립스입니다. 필립스가 여기 와서 중소기업들이 만들기에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팔겠습니까? 절대 안하겠습니다. 하고 저한테 3~4번은 사설에 나와서 곤란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동반성장은 있는 사람에게 뺏어서 없는 사람한테 주는 것이 아니라 경계 전체 파이는 그대로 하되 분배 룰을 바꾸자는 거예요.


한국의 GDP가 지금 100이라고 합시다. 그 100을 부자가 50까지 하고 가난한 사람이 50까지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동반성장이 추구하는 거는 GDP를 100에서 110으로 늘리되 분배의 룰을 바꿔서 좀 전의 룰대로 라면 부자한테 55 가난한 사람한테 55가야되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분배 룰을 바꿔서 부자는 이미 잘 살게 됐고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굉장히 어려우니 그렇게 55:55로 분배하지 말고 54:56, 53:57 52:58 정치 지도자들의 철학에 따라서 달라지겠습니다만 경계 전체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 룰은 가난한 쪽에 조금 유리하게 하자는 것이 동반성장이 추구하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동반성장위원회는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주로 얘기한다마는 동반성장 연구소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동반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뿐만 아니라 빈부 간 도농 간 취업 간 서울과 비 서울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국가가 동반성장의 개념이 아주 넓게 확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자면 남북한 간의 동반성장 뭐에요? 개성공단이 아주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지역 간 동반성장을 위해서 제가 서울대총장 할 때 입시제도에서 지역균등선발제를 채택한 거 알고계시죠?

남녀 간 동반성장 이것도 역시 제가 서울대학교 생기고 최초로 학장들은 여성교수가 있었지만 처장들은 여성교수가 없었는데 황우석 사건으로 유명해진 노정애교수를 연구처장으로 모신다던지 사범대학에 이민하 교수를 학생처장으로 모신다는 것이 다 남녀 간 동반성장을 위한 것 이었다고 생각 할 수가 있죠. 그래서 동반성장의 의미는 굉장히 넓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첫째 동반성장이 뭐냐고 물어보면 전 이렇게 대답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동반성장하면 뭐가 좋은데 왜 해야 되는데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한국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이런 질문을 우리가 다뤄야할 핵심적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한국경제실상이 어떤 것인지 대한 이해를 조금 하고 있어야 되겠죠?

말할 것도 없이 한국경제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밝은 면이 무엇일까요? 한국경제 참 컸어요.

정말로 인구가 오천만 명이 넘는 나라 중에서 일인당 소득이 한국이 7등입니다. 나머지 여섯 나라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불란서 이태리 6개죠. 거기다가 한국까지 포함해서 인구가 오천만 명이 넘는대도 일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거나 또 3만 달러에 접근하게 됐다는 것이죠. 지금 한국은 이른바 구매력 평가 지수로 하지 않으면 일인당 소득이 3만3천 달러 3만4천 달러 같은 물건이 서울이 아무리 비싸다 그래도 뉴욕이 좀 더 비싸겠죠? 뉴욕물가로 치면 우리도 일인당 소득이 3만3천 달러 3만3천 달러 다 이렇게 된다는 말씀이죠. 굉장히 큰 나라에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불란서, 이태리에다가 캐나다를 합한 것이 바로 G7입니다. 여러분 신문에 G7이 날 때마다 아휴 우린 언제 저렇게 되나 생각 할 수 있지 않습니까? G7이 1970년대에 미국도추에 세계경제 끝났다 이제 다른 나라와 같이 세계경제 실세에 관한 논의를 하자해서 만든 게 G7인데 아까 말씀드린 여섯 나라에다가 미국이 자기 이웃나라 캐나다를 합해서 G7이 된 건데 우리기준으로 하면 우리도 G7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5030클럽이라고 그래가지고 50, 100만이라고 하는 인구에다가 30천 이라고 하는 일인당 소득이라고 하면 우리도 될 수 있죠.

 제가 말조심을 잘 안하는 편이거든요. 재작년에 캐나다에 토론토대학가서 세미나를 하는데 교수들 50분 있는데서 한국이 이제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7대 강국에 들었다 그랬더니 기분나쁜가보더래요. 캐나다 교수가 why not us? 왜 우리는 아니냐? 그래가지고 캐나다는 일인당 소득이 사만오천달러가 넘은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인구가 삼천사백만인데 어떻게 세계경제실세에 관한 논의를 할 수가 있겠냐.

그랬더니 아이 중국 러시아 사람들이 why not us? 왜 우리는 아니냐? 그래 같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인구는 무지무지하게 많지만 일인당 소득이 만 달러도 안 되면서 무슨 세계경제실세에 관한 논의할라 그러냐?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만, 한국경제가 굉장히 큰 게 자랑이에요. 그래 이것을 사실 짧게 잡으면 5~60년 길게 잡으면 70년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나름대로 자본주의를 사회도입을 하고 그 시장경제가 기초가 되가지고 지난 70년 동안 발전을 한 거죠. 근데 뭐 때문에 그렇게 발전했냐? 그러면 여러 가지가 얘기할 수 있지만 적어도 두 가지만 대면 하나는 도전정신 또 하나는 교육에 대한 관심과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전정신이 뭐에요? can do, spirit, fighting 무슨 hungry spirit 이런 것이 도전정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지난번 영화 국제시장 보셨죠? 거기 덕수인가 대단했죠? 그거 보면 정말로 우리세대 보다 조금 앞선 세대들이 이 나라 경제를 크게 하는데 얼마나 크게 했는지를 이해 할 수 있을 겁니다.

교육열이 대단하죠? 세상에서 교육열이 제일 대단한 두 나라 이스라엘과 한국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물론 모방형 인적자본을 형성하는 투자였지만 일단 앞으로는 창의형 인적자본투자를 해야 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시대는 우리가 남 따라가면 됐기 때문에 베끼는 거 잘하고 외우는 거 잘하는 사람이 저 같이 창의성이 없는 사람도 베끼기도 하고 외우는 거 잘해서 그냥 학교에서 잘 쓰고 했던 거예요. 그런 시대였었는데 이제는 조금 바뀌어야 되나?

그래도 과거 그 시대에 맞는 교육을 잘했기 때문에 오늘날 잘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경제를 더 크게 하려면 도전정신도 유지하고 동시에 교육을 모방형인적자본 형성교육에서 창조형인적자본 형성으로 바꿔야 됩니다. 아직 멀었어요. 오바마 대통령이 자꾸 미국사람들 보고 한국의 교육으로부터 배우라 그렇게 얘기할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 다른 말도 맞는지 신뢰가 안 가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말하는 것은 한국의 교육열 그리고 또 과거 모방형인적자본이 좋았다고 표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유인물을 안 받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총장님한테 부탁을 좀 드릴 테니까 제가 보내드린 글을 뿌려가지고서 다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글의 막판에 한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된다. 하나는 부정부패 없애야 된다.
세월호 사건 때 부정부패 실상을 많이 볼 수 있었죠? 정말 우리 사회가 이래도 되나 부끄러울 정도로 부정부패의 만연의 모습을 볼 수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동시에 교육욕심을 해야 됩니다. 시간이 있다면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두세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하는 우리 교육을 이제는 지덕체에서 체⦁덕⦁지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덕체 잘 안 되고 있죠? 체, 체육시간 없는 학교 많아요. 자율학습으로 하는 학교 많고 덕, 자기아이가 한 대 얻어맞으면 그 다음날 가서 담임선생 한 대 때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덕이 되겠습니까? 안 돼요. 지, 수능도 덜 틀리기 경쟁 내신까지도 덜 틀리기 경쟁에서 지가 될 수 가 없어요! 제가 유학할 때 제일 인상적이 이었던 건 15살짜리가 제가 다닌 학교에 수학박사로 있는 걸 봤어요. 그

래서 그 학교에 물어봤더니 어떻게 이렇게 됐냐. 그랬더니 월반에 또 월반해 같고 13살인가 14살에 대학원 들어 와가지고 1~2년 동안에 박사 받았다고 그러대요.

 

그래서 신기해갔고 그 박사학위 논문을 보자 그랬더니 1년 동안 안 보여 준다고 그래서 1년 후에 가서 봤는데 그 박사학위 논문이 13~4페이지에요. 목차 2페이지 고맙다는 말 2페이지 내용은 10페이지도 안 돼요. 물론 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죠. 기호 막 쓰여 있는데 제가 무슨 재주로 하겠습니까. 제가 드릴 말씀은 그 잠재능력이 있으면 그걸 같다가 다 개발 시켜 갖고 천장을 뚫을 수 있도록 까지 해줘야하는데, 우리는 전부 덜 틀리기 경쟁이기 때문에 안타깝다는 거하고, 두 번째로 지⦁덕⦁체 말고 수명은 100살이나 되고 요즘에 심신이 해로운데 더욱더 체⦁덕⦁지로 하자 그걸 강조하고 다닙니다.

근데 이 체⦁덕⦁지 교육을 제일 잘 묘사한 책이 하나 있어요. 그건 1690년대 나온 책이니까 320년이 넘었죠. 원 저자는 존 로크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원제목은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이고 번역편이 있어요. 박혜원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교육원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로크가 서문에서 썼어요. 영국국민을 민주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여기서나마 제시하고 있다 했는데 일장에 말씀이죠. 신체의 건강에 관해서고 2장부터 19장까지는 완전히 인성교육에 관한 겁니다.

 

상벌에 관해서 체벌에 관해서 예절에 관해서 그 당시 1690년대니까 17세기 아닙니까? 영국과학기술 연맹이 극도 하여 절정에 달했을 때니까 새로이 신약을 아이들한테 줘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신세계에서 온 과일을 아이들한테 맘 놓고 줘야 되느냐 이런 것이 2장부터 19장까지 18장에 걸쳐서 있습니다. 덕성이, 20장에 가서 학습에 관해서 21, 22장에 해외여행에 관해서 있는데 이 책이 학부형임직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직도 교육시킬 자녀분이 계시면 그 책 한번 꼭 읽어 보십쇼.

박혜원의 교육론이고 원제목 로크에 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이라는 책인데 이렇게 지덕체를 체⦁덕⦁지로 바꾸고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조직도 그렇듯이 교육기관도 다양해야 창의성이 나오는데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울대학교 지역균형선발 한 게 그거에요.

그런데 신문서는 정운찬이 평소 마인드가 좋다 그랬지만 서울대학교 학생들 구성들을 봤더니 100명중에 42명이 서울사람 26명이 강남 삼구 사람이 되어요.

우리 대학교 진짜 서울대학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더 나아가서 강남대학 될 것 같다 라고해서 전국에서 골고루 들어오게 되도록 교장선생님 추천 받는 사람으로 천명 뽑고 나머지는 일반전형으로 했던 것인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부딪히면 다양한 간접경험을 서로 공유하게 되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기관들이 다 이렇게 다양하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지만 시간이 많이 가서, 장기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지금 5030클럽 잘사는 나라 됐다 계속 잘살려면 교육도 좀 고치고 부정부패도 없애야 되겠다.

 

이런 건데 그러나 지금 어두운 면이 참 많아요. 제가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 막걸리한잔 맥주한잔 주로 마시고 들어갑니다. 근데 거기 제가 다니던 단골집이 다 문 닫았어요.

월세 올려 달라고 해서 또 손님이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닫았는데 그거는 뭐에 표현이냐면 한편으로는 우리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0년대만 해도 8% 알파 성장했고 90년대는 6% 알파 성장했고 2000년대는 4% 알파 성장했는데 2010년대 들어와서 지금 3%넘기기가 버겁죠. 작년도 2% 금년도 2% 내년에도 2% 걱정이에요.

저성장의 늪에서 빨리 헤어 나와야 되는데 벌써 3년여 동안에 2% 고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 경제 실상이 좀 보이시지 않습니까?

이게 굉장히 힘들어요. 근데 성장이 안되는 게 뭐가 그리 걱정이냐 성장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르지만 성장률이 낮으면 고용이 낮지 않습니까? 고용이 안 되면 소득도 없고 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물론 성장해도 고용이 않일어난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게 있고 성장해도 임금도 안 늘어난다. 임금 없는 성장이라는 말도 있긴 있지만 성장 안 되면 고용이 일어날 리가 없고 임금이 늘어 날 리가 없기 때문에 성장을 좀 올려야 되고, 그 다음에 양극화 이것도 심해요.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진위 개수가 0.26~, 0.35, 036 으로 늘어났고 그 다음에 4대 그룹 있죠. 4대 재벌 삼성, 현대, LG, SK가 그룹의 기업 중 상장된 기업들이 올리는 매출이 GDP하고 비교해서 60%에요.



경제적 힘이 한군데에 쏠려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경제용어를 아는 분들은 “GDP하고 단순비교가 안된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80년대 초반에는 20% 10년 전에는 40% 지금은 60% 이기 때문에 경제적 힘이 한군데 쏠린다 이런 말씀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어떤 조직도 그렇고 힘이 한군데 쏠리면 발전할 수가 없지 않습니다.

 

작년에 세월호 다 평형수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새 류현진 지금 몸의 밸런스가다 안 갖춰져서 잘 안 되잖아요. 추신수 시즌 초부터가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안 갖춰져서 고생을 한 건데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죠. 한군데 쏠리면 발전할 수 가 없는 거예요.

사실 한국경제를 표현하면서 제일 처음 듣던 게 다이내믹 코리아였죠? 다이내믹코리아 얘기 들을 때만 해도 배부른 소리를. 이 사람들이 진짜 칭찬해 주는 건가? 아마 안프리티커블 코리아라고 말하고 싶은데 다이내믹이라고 쓰는지도 몰라. 배부른 소리를 했는데 누가 다이내믹코리아 안 해주나? 좀 그래요. 자기들끼리만 다이내믹하데요. 그저께 부산 갔더니 다이내믹부산, 충청도 갔더니 다이내믹충청 하는데 좀 더 경제가 잘되려면 성장률도 높이고, 양극화 현상도 줄이고, 해야 되는데 지금 박근혜정부에서 노력을 많이 했죠. 한번은 현오석 부총리 모셔가지고, 규제타파를 통한 투자증진 최경한 부총리를 모셔갔고 소득증대를 통한 소비 증진 꽤하고 있었죠. 맞죠?



그러나 실적은 미미해요. 왜 미미했냐면 진단이 틀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단과 처방이 옳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경제가 잘되려면 한편으로는 생산능력을 계속 확충시켜야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생산능력을 활용해서 만든 물건에 대한 수요가 많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투자도 활발해야 되고 소비도 활발해야 되고 수출도 잘돼야 되는데 수출 잘되는 거야 외국 사람들 몫이고 국내에서는 소비가 잘되고 투자가 잘 돼야 되는데 최경환 부총리의 소비 증진책이 성공하기 힘든 건 “소득을 증대시켜서 소비를 늘리도록 유도하자. 그러면 경제가 좋아질 거다.”라는 건데, 소득증대가 어려워요.

또 소득을 증대시켜 줬다할지라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소득이 뭐가 있어요. 대게 배당소득, 임대소득, 이자소득, 근로소득 대게 4가지죠? 근데 기업들보고 당신들 돈도 많고 현금도 많고 사내유보도 많으니까 배당해 주자 그러는데 배당을 해줄 정도로 사내유보도 많고 현금이 많은 기업들은 대게 외국인이 주식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기관 투자관들이 갖고 있지 개인이 갖고 있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배당을 해줘도 개인한테 안돌아간다 이런 말씀이고, 임대소득증대는 한계가 있겠죠? 땅을 금방 넓힐 수가 있어요? 집을 금방 넓힐 수가 있겠습니까? 이자소득은 계속 내려가고 있죠. 남은 게 근로소득인데 근로소득 쉽게 늘릴 수가 있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경제학자 중에 일반이론을 쓴 케인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케인스의 일반이론에 일 페이지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철직 이게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다. 임금은 한번 올려주면 절대 안내려간다.

기업들이 임금을 올려주려고 안 그래요. 최저임금을 좀 더 올려달라고 하더라도 잘 안올려주고 일반임금도 잘 안올려주기 때문에 임금 이자 임대 배당 소득 다 올리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올렸다 치더라도 그것이 소비로 연결 될 것이냐? 잘 안됩니다. 부채가 많기 때문에 그렇죠.

 가계부채가 1130조라 그러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지금 사회분위기가 침체해 있죠. 십년 전만해도 당신이 중산층입니까? 그러면 75%가 “네.” 이랬는데 “당신이 중산층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중산층이라고 하는 경우가) 30% 더 나올 정도죠. 옛날만 해도 다들 부자는 티 안내려고 중산층이라 그랬고 가난한 사람들은 창피해서 중산층이라고 다 그리 7~80% (중산층이라고) 그랬는데 (요즘은) 과감하게 자기가 하류층이라고 막 그러는 거 같아요. 여러분 학교 다닐 때 기억나세요?



학기 초에 선생님들이 뭐 물어보던 거 기억나시죠? 피아노 있는 사람 손드세요, 냉장고, TV 그랬는데 저희 집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가지고 어떻게 하나 그러는데 라디오가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이것마저 안 들어도 될까 했는데 옆에 둘러봤더니 거의 다 들어서 나까지 들어가지고 우리 집도 라디오가 있는 걸로 통계가 잡혔을 텐데 그땐 다 중간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요새는 그런 성향이 다 있을 텐데도 너무 어려우니까 자기 중산층 아니라고 한다. 이런 말씀이죠.

그래서 소비 늘림이 힘들어요. 그러면 투자 우리 현오석 부총리는 규제타파를 통한 투자증진을 이제 추구했는데 굉장히 힘들어요. 투자가 왜 안 되냐 규제 때문에 안되는 게 아닙니다.

규제가 풀리면 투자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규제 풀리면 투자가 늘어나는 거는 글쎄, 머릿속에 생각이 나는 것은 덕성여고 앞에 한진이 호텔 짓는 거면 몰라도 정말 큰 의미 있는 투자라고 하는 것은 규제를 풀었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말로 수지맞는 투자대상이 많이 있어야 되는데 현재 투자는 누가하죠? 기업이 하지 않겠습니까? 기업은 대기업하고 중소기업으로 나눌 수 있죠? 대기업도 투자안하고 중소기업도 투자안하면, 이게 17년간에 우리 경제흐름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명박 대통령 때도 박근혜 대통령 때도 17년 반감 투자가 잘 안 이뤄졌어요.


왜 안 이뤄졌냐? 그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투자처의 여유를 좀 없애야 되지 않겠습니까?

동의하시죠? 대기업이 왜 투자 하냐? 돈은 천문학적으로 많은데 투자 대상이 없다. 대기업이 갖고 있는 돈이 정의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에서 나온 통계에 의하면 여의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기업 가지고 있는 돈이 4백조~5백조라고 그래요, 그러면 4백조 감이 안 오시죠? 오세요?

1조는 오세요? 경제학을 50년 가까이 공부했지만 제 머리 속에 1조가 안 들어와요. 그래서 억지로 비유를 하나 만들어봤어요. 1조가 얼마나 큰돈이냐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태어나셔서 그날부터 오늘까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백만 원씩 써도 1조 원 다 못 쓸 정도로 큰돈입니다. 저는 어제 저녁에 다 계산해봤기 때문에 한번 해볼까요? 하루에 1백만 원씩 쓰면 1년에 얼마에요?

3억6천5백만 원이죠? 1,000년이면 3,650억 원이죠 2,000년이면 7,300억 원이죠 예수님이 2015년 전인가 2019년 전에 태어나셨다면서요, 아직 멀었죠. 일조? 부처님도 아마 금년이 불기 2,560년 전 정도 됐을 텐데 부처님도 아직 멀었어요. 그렇게 많은 돈에 4백배 5백배 갖고 있는 투자를 안 한 이유는 수지맞는 투자대상이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대기업 정도 되면 이제는 투자 하려면 첨단기술 핵심기술이 있어야 되는데 첨단 핵심 기술이 부족하다. 이게 한국경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첨단핵심기술 부족하다는 거죠. 그럼 이제 사람들이 묻습니다.



한국이 지금 R&D지출 연구 및 개발 지출이 세계 5등이고 GDP하고 비교해서 세계 1등인데 첨단핵심기술이 왜 없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데 답은 R&D 지출은 많은데 거의 다 D지출이고 R지출이 없다는 것이죠. 연구 및 개발 지출이 세계 5등인데 거의 다 개발 지출이지 연구 지출은 없어서 전국 돌아다니면 세계적인 공장이 많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경제를 폄하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R&D에서 D가 대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 R도 리서치가 리파인먼트에 불가하다 외국 사람들이 아예 여기에다가 조금 덧붙인 거에 불가하다 한국경제가 재도약을 하려면 R&D의 방향전환이 이뤄져야 된다. D에서 R로 R도 리파인먼트에서 리서치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향전환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시간이 필요하죠.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려면 시간이 앞으로 많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할 게 없나 중소기업은 어떨까 중소기업은 주로 중위기술이긴 하지만 투자할 것은 굉장히 많은데 돈이 없어서 투자 못한다! 그럼 뭐하면 되겠어요? 돈 주면 되죠? 줄 돈이 있냐? 없다 누구한테 주냐? 잘 모르겠다. 이렇게 답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70년대 60년대만 해도 세금을 걷어서 또 한은(한국은행)한테 돈 찍으라고 그래 같고 유망사업과 유능기업에 나눠주면 됐어요. 그때 돈 받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재벌이 됐고, 성공 못한 사람들은 망하고 말아버렸습니다. 오늘날은 민주국가가 돼서 세금전황이 많고 조세전황도 많고 또 한은(한국은행)이 독립이 되어 가지고, 돈 찍는다. 그래 갖고 돈 찍지 않습니다.


 

돈 모으기도 힘든데 거기다가 경제가 크고 복잡해져서 이제는 유망산업이 어딘지, 유능기업인지, 누군지를 알기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동반성장위원회 때 제안 해낸 것이 초과이익공유제하고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하고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서 물건을 발주할 때 중소기업위주로 발주해라 이런 건 제안했었죠. 여기서 그런 것들 모두 다 설명할 겨를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감으로 느끼세요. 대기업이 10조 이익을 목표했는데 17조가 생기면 7조는 초과이익이라고 생각하고 협력중소기업한테 나눠줘라 그러니까 이것을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보상적 차원이다.

왜 보상적 차원이냐면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 최근 2개 나왔습니다만, 그 결론이 수출대기업의 초과이익은 적지 않은 부분이 점잖은 사람은 ‘적지 않는 사람’이라 썼고, 제가 보기에 덜 점잖은 사람은 ‘많은 부분’이라고 썼대요. ‘적지 않은 부분’이건 ‘많은 부분’이건 초과이익에 적지 않은 부분이 납품가 후려치기에 기인한다고 나왔어요. 수출대기업이 수출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납품받을 때 납품가 후려치기를 한 결과, 초과 이익이 나왔다. 그러면 시혜적 차원에 대해서 아니라 보상적 차원에서 나눠주는 걸 받은 중소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해외진출이나 고용안전을 위해서 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튼튼해질 거고 그들이 튼튼해지면 당연히 대기업도 튼튼해지겠죠.

 

이게 초과이익 공유의 기본 아이디어고 중소기업적합업종은 사실 1979년에 중소기업 고유 업종제도가 생겨서 어디는 대기업 들어오지 말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재벌개혁을 제대로 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신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에 이걸 없애 버렸어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정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없애 버렸는데, 제가 동반성장위원회에 가서 이것을 부활시켜서 중소기업 고유 업종제도는 없어졌지만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를 새로 시작해서 한 80개 정도는 못 들어오게 해서, 레미콘, LED조명등, 된장, 간장 뭐 이런 것들 못 들어오게 했고요, 그 다음에 중소기업위주의 정부발주는 과거엔 중소기업을 못 믿으니까, 정부가 물건 살 때 대기업한테 사면 대기업은 손도 안대고 돈 떼고 하청 직부터 손도 안대고 돈 좀 떼고 또 어디서 세 라운드 네 라운드 거쳐서 생산이 되기 때문에 최종 생산하는 사람한테 돈이 안 가므로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0억 미만의 조달은 전부 중소기업한테 하라 하는 제도를 만들어 놨습니다만, 이런 것들이 성공하면 대기업으로 흘러간 돈 또는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이 투자대상은 있는데 돈이 없었던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투자가 늘 면 생산이 늘고 생산이 늘면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늘고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단기적으로 경기침제를 완화하고 좀 더 길게 보면 장기적 성장에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제가 여러 번 강조했지만 이 주역이 중소기업이라고 한다면 99%이상이 중소기업이에요. 기업 중에 고용의 88%이상이 중소기업입니다. 중소기업이 잘되면 은 양극화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동반성장의 이점이다. 왜 동반성장 해야 되는 이유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좀 지루하셔도 더해도 되죠? 괜찮아요? 큰소리로 괜찮다고 하세요. 미안합니다. 막 학생들 다루듯이 해서, 자! 첫 번에 동반성장 아이디어는 언제 나왔냐? 동반성장 뭐냐, 동반성장 왜 좋은 거냐 했죠? 동반성장에 제가 왜 관심이 많으냐? 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학생들도 많으니까, 저 어릴 때 얘기해도 괜찮겠죠? 제가 워낙 이과 지망생이었었어요. 고1, 고2 때 이과 가서 공과대학가서 화공과 나와서 충주비료 취직 하는 게 어릴 때 제 꿈이었습니다.


고1, 고2 때. 그땐 정말 갈 때가 없었어요. 공개 채용이라는 게, 한국은행 삼성물산, 충주비료 이런 데 밖에 없었지. 그때 하는 말로 빽 이라는 게 있었는데, 빽 이 좋아야 취직하지 빽 이 좋지 않으면 취직 할 수 없으니까 공개 채용하는 데를 찾았어야하는데 그래도 충주비료 기사 하면 들어가면 내쫓지도 않을 것 같고 뭐 괜찮을 것 같아서 충주비료 갈라고 이과 공부했죠. 수학, 물리, 화학 열심히 해서 잘했어요. 제가 자랑하나해도 되죠? 제가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화학을 좋아하고 잘해서 고3 화학 가르치시는 분이 1학년인 우리 반도 가르치셨는데, 10월 하순인데 “정군! 이리로 와서 채점 혀어.” 충정도 사람이라. 봤더니, 고3꺼 에요.

 

“선생님 저 이거 못합니다. 저 고 1입니다.” 그랬더니, “거의 다 단단 식이여. 혀어.” 그래서 했어요. 하고나서 집에 가서 너무 뿌듯한 거예요. 내가 고3 모의고사 화학을 채점했다고 그 다음부터는 더욱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과를 확정 지으려고 했는데, 고3 올라갈 때, 문과 이과 지망해서 내라고 하는데, 당연히 이과죠. 480명 중에 380명이 이과가고 100명이 문과 간다고 하니, 학교에서는 깜짝 놀라가지고, 그냥 대대적으로 문과 보내는 캠페인을 했는데, 그룹으로 설득을 하려면 설득이 안 되거든요.

각개격파 한다고 20,30명씩 모아가지고, 생물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백지 한 장씩을 나눠주시더니, 교정에 있는 나무를 써내라고 하시더니, 시시한 질문을 하셔서 성의 없이 대여섯 개 썼어요. 그랬더니, “야! 너 정군 반항하는 거야?” 그래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랬더니 “이거 성의 있게 썼어?” “성의 있게 썼지요.” “너 정말 다섯 개 밖에 몰라?” “저 정말 다섯 개 밖에 모릅니다.” “너 중학교부터 다녔어?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어?” 물으시는 거예요. 저희 때는 중학교 입시가 있었거든요. “중학교부터 다녔습니다.” “그럼 너 5년 다닌 거잖아. 그럼 너 5년 다니고도 교정에 있는 나무이름 다섯 개 밖에 모르면, 관찰력 부족이야 너 문과 가야돼.” 그래가지고 문과를 갔어요. 그 다음에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으로 스코필드 박사에게 물어보자. 저희 어머님은 문과 중에서 법대 가라고 하시는데, 스코필드 박사한테 가서 물어보기로 했어요. 스코필드 박사 잘 모르시죠?


연세 드신 분들은 아실지 몰라도. 여기 젊은 사람들 아마 마이크 스코필드 정도 알거에요. 미드 나오죠? 프리즌 브레이크 보셨어요? 거기 나오는 마이크 스코필드 있죠? 그 스코필드 말고 프랭크 스코필드, 마이크 스코필드가 몇 년 전 와서 기자회견 하면서 내 한국명은 석호필입니다. 돌 석자, 호랑이 호자, 도울 필입니다. 이름은 내가 지은 게 아니라 나보다 한참 앞에 한국에 왔던 사람에 이름이 석호필 이라, 저도 석호필 이라 하겠습니다. 라고 한 얘기가 있는데, 그 석호필이 프랭크 스콜필드이고, 1916년에 세브란스의전에 와서 교수하다가, 삼일운동이 언제 일어났죠? 19년에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19년에 이갑성 선생이 국제정세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하다가 정말 두 주일 동안 열심히 조사해서 가르쳐 주고, 또 이갑성 선생이 우리가 거사를 벌일 텐데 사진을 찍어 달라 해서, 탑골공원 앞에 시청 앞에 덕수궁 앞에 사진 다 찍어가지고 출국하는 선교사한테 내보내서 삼일운동이 세상에 알려진 겁니다. 물론 다른 사진도 있지만, 역사가 거의 프랭크 스코필드 사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뻥이 좀 있는지 모르지만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있었던 신용하 선생님은, 이동관 총장님 신용하 선생님 아시죠? 뻥이 좀 있으시잖아, 이거 다 스코필드가 찍은 거에요! 몰라 모를지도 모르겠는데, 그 때 만세운동 가장 격렬하게 벌인 곳이 바로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하고 수천리입니다. 거기서 만행이 무지하게 벌어졌어요. 일본사람들이 동네사람들 오라고 해가지고 20명 30명 모아놓고 교회에다가 모아놓고 문 닫고 기름 뿌리고 불 지르고, 총으로 쏴서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라, 제암리는 동네 집에 다 불 지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접한 스코필드 박사는 이 소아마비인데도, 자전거를 하나 구해서 경부선을 타고 수원에 가서 수원서 부터 제암리 가기가 간단하지 않아요, 자전거 타고 가서 사진을 다 찍어 가지고 또 출국하는 선교사들에게 돌려가지고, 세상에 제암리 수천리 사건도 알려지게 된 겁니다. 그 스코필드 박사 당연히 추방되었죠.

 

1920년에 추방되어서 16년부터 20년까지 연세대학교 전신인 세브란스의전에서 교수하시다 갔는데, 그 분이 독립유공자라고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그러다가 정부수립 10주년 기념 때 저 1958년 이죠. 그 때 이미 스코필드 박사가 (영국태생) 캐나다에 있는데 모교인 토론토 대학가서 35년 동안 교수 잘하고, 정말로 세계적인 수의학자 에요, 수의 병리학 수의 세균학 등 은퇴하고서 이박사가 오라고 하셔가지고 58년부터 돌아가신 1970년도 까지 우리 한국사회에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운동을 개인적으로 글로서 했죠. 그 때 동아일보, 조선일보 이런 신문들에 한국일보 스코필드 박사 말씀 자료가 이만큼 되고, 코리안 타임지나 이런 명문에도 기고했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 사시던 때에도 캐나다나 미국에 신문에다가 조선독립의 필요성과 필연성에 대해서 많이 쓰시던 분인데 그 때 그분이 그런 일 뿐만 아니라 자선사업도 했어요.

 

친구들에게 돈 모아다가, 유린 보육원 봉원 보육원 같은 것을 했고, 그 다음에 집안 경제가 어려운 사람들한테 학비를 주셨어요. 제가 사실 수혜자 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새 동반성장 운동과 함께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기념사업 운동 본부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그분이 한국에 온지 백년 되는 해이기 때문에, 내년에 대대적인 운동을 벌일 계획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만, 그분에게 갔더니 뭐라고 하시냐면, 우여곡절 끝에 그분에게 간 겁니다. 잘 모르겠어서. 그랬더니, 한국이 지금 경제개발 오개년 계획이 1차분도 다 안 끝났는데, 1962년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근데 빈부격차는 심하고, 특히 부는 익부 하고 빈은 익빈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하고 저보고 “빈부격차를 해소하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가르쳐주는, 대학가서 공부를 하고 일생을 빈부격차 완화하는데 힘쓰면서 살아라.” 이게 저한테 주신 유훈이에요. 그래서 경제학과를 가게 됐고, 우리 스코필드 박사 이후로 저한테 영향을 주신분이 조승 선생님이신데, 대학 갔더니 그 분은 입에 달고 다니는 단어가 조화, 균형, 중용, 밸런스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그분의 영향을 받고, 80년대부터는 제가 또 그분이 조승 선생님하고 고려대학의 최상용 교수께서 저보고 신문에 글을 쓰라고 그래서, 이총장님 미안합니다. “제가 잡문을 쓰면 어떻게 합니까?” 그랬더니 무슨 “예의야? 정성들여 쓴 거는 신문도 좋은 글이고 정성 안들이면 교과서도 다 잡문이야.”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신문에 십여 년 동안 글을 열심히 썼습니다. 재벌개혁을 비롯해서 사회개혁에 관한 글을 썼는데, 쓰다가 보니깐 거기에 빠졌어요.

 

스코필드, 조승, 그 다음에 최상용 이런 사람들 덕으로 제가 이 동반 성장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충청도 사람인데, 서울로 아버지가 이사를 시켜놓고 나서는 1년 만에 돌아가셔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3때까지 7년 동안 점심 먹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저희 집엔 점심 싸는 도구인 도시락 이라는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 가서 이러면 안 되겠다 해서, 저는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고등학교 1,2,3학년 전부 입주 가정교사로 지냈습니다만, 당연히 초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6학년 때 8월 달인가? 대학로가 있는 동숭동에 살았었거든요, 서울대학 교수 한분이 경상도 발음이 강하셔서 흉내도 못 내지만, “야! 너 공부도 잘한다며? 공부 잘해서 경기중학가면 우리가 등록금 준다.”

 

그래서 열심히 해가지고 경기 중학교 갔더니 그분이 스코필드 박사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스코필드 박사가 제 중학교, 고등학교 등록금도 대주시고, 또 생활비도 가끔 주시고 해서, 중3까지는 잘 지내고, 고등학교까지도 도와주시고, 고등학교 가서 입주 가정교사하면서 제일 기쁜 게 점심을 먹는 거예요. 그것도 부잣집에 가정교사니까 보통 점심이 아니죠, 그 당시 하는 말로 소고기 장조림에다가 계란 반찬 있는 도시락을 싸서 먹어서 기분이 좋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스코필드 박사를 1960년에 처음 만났는데 1970년에 돌아가실 때 까지 10년 동안 저의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셨습니다. 운찬 그러면서 “정직이 가장 경제적인 생활방법이다.”



첫 번째는 한번 거짓말하면 덮으려고 또 거짓말 또 거짓말 얼마나 비경제적이냐고 가르치셨고, 두 번째는 어려운 사람 특히 선한 사람을 만나면 비둘기의 자애로움으로 대하고 강한 사람 특히 정의롭지 못한 강한 사람을 만나면 호랑이의 날카로움으로 대하라고 그러고, 거기 보태서 사회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단지 건설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으라고 가르치셔서 그 후에 저의 언행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겁니다. 특히 그분이 강조한 것이 국력이에요.



국가의 힘. 하루는 (이한기 법대 교수님 오실 때 쯤 맞춰서 간 게 아니라) 대학로를 스코필드 박사님하고 함께 산보를 하고 있는데 그분이 오셔가지고 꾸벅 절을 하니까 “누구십니까?” 물으니까 “제가 법대 이한기 입니다.” 그래서 “뭘 가르치십니까?” 했더니, “국제법.” 하니까 “세상에 있지도 않은 것을 가르치면서 월급 받으면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했더니만, 저는 당황스러워서 혼났는데 숙소에 다시 와서 “그게 무슨 짓입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1차 대전 때 1916년 때 여기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1차 대전 때 친구들은 다 군대 가는데, 소아마비라 군대 못가서 미안 해 하던 중 연세대학에 세브란스에, 올리버 데이비슨이라는 사람이 초청을 받고서는 그 당시 주위에 만류를 무릅쓰고 왔는데 1차 대전 때도 그렇고 2차 대전 때도 그렇고, 2차 대전 후에 미국에 패권을 보게 되면 나라의 힘이 세상을 좌우할지 국제법이 세상을 좌우 하는 것이 아닌가?

 

국제 법은 데코레이션이다.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하셨는데, 동의하시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먹어도 오바마 대통령이 “좋은 일 아니야.”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국가의 힘이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런 식으로 제가 영향을 받아서 결국은 오늘날 동반성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잘 되어가고 있느냐, 어떻게 보면 잘 성장이 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아직 멀고 그런데, 제가 매일 제 친구들한테 하는 얘기가 있어요. “동반성장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에는 대기업들이 양심에 가책을 하나도 느끼지 않으면서 불공정 거래 행위를 했지만, 그 후로는 좀 미안해하면서 한다.”면서 그래요. 불만스러움을 우리 친구들한테 얘기하는 것이죠. 그뿐만이 아니라 각 대기업들이 다 동반성장 팀을 만들어서 적어도 겉으로는 동반성장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은 우리가 훨씬 더 많이 해야 돼요. 제 친구 하나는 일본과 거래를 하고 하나는 독일과 거래를 하는데 일본에서는 밉살스러워도 일본사람에게 배워야할 건 배워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떤 대기업 일본사람은 가끔 친구에게 돈을 보낸다는 거예요. 무슨 돈이냐고 하니까 “아! 잊어버렸구나! 말할걸, 정부에서 우리 산업에 보조금을 줬으니 협력 중소기업하고 나눠 가져야하는 되는 것이기 때문에 준다.”는 것입니다.

백만원이고 이백만원이고 준다는 거고, 독일하고 거래하는 제 친구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를 때마다 여긴 가만히 있어도 저쪽에서 납품가를 더 올려주고 하는 점은 본받아야할 것 같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건 미국에서 많이 보시죠?

워런버핏, 조지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빌게이츠 이런 사람이 있는데, 본받아야할 것 같은데, 아직도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신을 안 차리고 있어요. 잘못하면 이 사회 파탄 납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안 차리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만, 정신을 안 차리면 굉장히 힘들 것이고, 그분들이 정신을 안 차리면 결국 대통령이 해야 돼요.

 

철학도 있이, 의지도 갖고, 현실감각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이 나쁜 마음먹고 그렇게 고유 업종제도 없앴겠습니까? 주위에서 자꾸 국가 경쟁력 떨어진다고 했으니까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역시 노무현 대통령도 현실감각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걸 전부 갖춘 철학과 의지와 현실감각을 갖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고쳐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한 3,40분 하려고 했는데, 교수는 말을 시작하면 항상 길게 하거든요. 미안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 멋대로 하라면 앞으로 15분정도의 한도를 두고 질문을 하시면 제가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동관 :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평소 워낙 듣던 말씀들하고 일치하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기왕 사이버대학교에 오셨으니까, 이 동반 성장이 정말 필요한 곳이 교육계입입니다. 제가 볼 땐, 수치로 말씀드리면 비교는 안 되겠습니다만, 대교협에 1년 지원하는 돈이 2조쯤 됩니다. 그리고 전문대학에 2천억 정도 됩니다. 사이버 대학은 작년에 11억인가요? 지원하겠다는 거를 사이버대학 21개 밖에 안 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 돈 받고 지원받았다는 소리 안 듣겠다. 총리 : 잘하셨습니다.
이동관 : 요지는 뭐냐 하면 이게 교육계에 지금 미래는 사실은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 총리님도 잘 아시는 것처럼 결국은 온라인 교육 쪽으로 가야하거든요.
저 엄청난 교육 시설 유지하면서 오프라인 대학. 대기업이 아니라 재벌 같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대학 총장 하셨습니다만, 총리 : 서울대학교. 이동관 : 그 유지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에 비하면 사실은 여기는 조금만 지원해도 퀼리티나 앞으로 단순히 저희가 국내적인 용도뿐이 아니고 사실은 이 기술을 개발하면 아시안 국가나 이런데 수출하는 쉽게 얘기해서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이거든요

또 관심을 갖고 많이 오는데, 우리 총리님께서 사실은 교육 현장에 계셨고 교육 정책에서도 깊은 식견을 가지고 계시니까, 이런 해답은 없을까?
그리고 앞으로 다른데 가셔서 동반 성장하실 때도 꼭 교육계의 불균형 격차 이것도 좀 관심을 갖고 지적을 해주시고 오늘 특히 그에 대한 해법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운찬 : 예, 제가 사실은 여기 아까 문화예술대에 대해서 잘 몰라서 여기 쉽게 오겠다고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준비 좀 해야겠다고 해가지고 구체적으로 많이 좀 준비 좀 해 봤어요. 네 사실은 제가 교수를 벌써 30, 미국에서 3년하고 공식적으로부터 서울대학에서부터 32년 했으니까 36년 교수를 했는데도, 장소를 바꾸면 긴장을 해요. 하고 싶은 말 잘 못하고 그래서 사실 이거를 보고 좀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우선, 제가 대학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관심을 갖은 것은, 이 정신문화와 물질문명과의 동반 발전입니다. 아시죠? IT다 뭐다 굉장히 발전 하는데, 다시 말해서 물질문명은 발전하는데 전통문화가 따라가느냐 하면 못 따라가요,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거든요, 휴대폰은 100달러다 50달러 25달러 하지만, 이쪽 공연장에서 공연이라고 하는 것은 생산성을 뭐로 재며, 참 잘했다 해도 그 값을 올리겠어요. 뭐 어떻게 하겠어요, 굉장히 어려운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 지도 교수 중에 한 분이 윌리엄 오머리 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쓴 책이 있어요. 이코노믹 서브 퍼포밍 아트라고 뭐라고 해야 하나요? 공연 예술의 경제라고 할까?

그 책에 보면 이 쪽 제조업에서는 효율성을 높이고 높이고 또 높일 수 있지만, 이쪽 문화 쪽에서는 공연예술 쪽에서는 생산성 효율성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양쪽이 같이 가려면 사회가 컨센서스를 이루어야 한다.

 

그 컨센서스가 뭐냐면 문화 쪽에 보조를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물질하고 정신하고 밸런스를 못 갖추기 때문에 길게 발전할 수가 없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코노믹 서브 퍼포밍 아트라고, 누가 한번 정리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번역판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보멀(BAUMOL), 윌리엄 보멀이 쓴 이코노믹 서브 퍼포밍 아트라는 게 있고요. 또 하나는 지금 제가 이런 걸 조사해 봤어요. 문화 융성을 통한 문화 소외 계층과의 동반 성장 이라는 걸 해왔는데, 요새 뭐 그런 말 많잖아요, 문화가 있는 삶 문화가 있는 날 이런 게 많이 있는데, 제가 신문에 글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라보헴 해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즐길까?
즐길 수 있는 기본이 갖춰져 있더라도 그 돈 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골고루 하이클래스 하고 조금 덜 하이클래스 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하이클래스만 즐길 수 있으면, 조금 로우 클래스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공급 사이드에서 골고루 공급을 하고, 수요 사이드에서도 돈이 없어서 문화산업에서 배제되는 것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사실 여기 많이 써왔는데, 여러분들이 다 아실거기 때문에, 두 가지 하나는, 정신문화를 꽃 피우려면 사회에서 컨센서스를 만들어서 보조해줘야 된다.

 

 그 다음에 문화산업에서 공급 사이드나 수요사이드나 다 잘 나가는 곳 하고 잘 나가지 않는 곳하고에 동반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지금 이동관 총장님이 질문하신 것은 교육에서 어떤 분야가 정말 너무 독식을 독식은 몰라도 자원이 한쪽에 쏠려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말씀인데,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저희 둘 다 서울대학 나왔지만, 서울대학이 지금 너무 제국주의적 애티튜드를 보여요, 그 단적인 예가 여기 혹시 시흥에서 오신 분 있을지 모르지만 시흥에 캠퍼스 하나 또 만들려고 그래요. 지금 저는 저 총장 그만 둘 때 쯤 황우여 씨가 저한테 와서 인천 송도지역에 땅을 한 평에 1원에 줄 테니까 가져가서 서울대학교 송도 캠퍼스를 올리라고 해서 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해 보겠습니다는 노 이었었어요. 우리가 지금 관악 캠퍼스 유지도 힘든데 그거 어떻게 할 거냐 그 지금 제국주의적 행동으로 막 건물이니 다 가져가면 학교에서 돈 거둡니다. 건물하나 오십억 짜리 얻으면 그 관리비 때문에 그 다음에 예산이 또 늘고 예산이 또 느니까 교육부에 가서 우리 건물유지도 필요하다고 해서 자꾸 해서 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건데 저는 뭐 당연히 자원에 배분을 지금보다는 좀 더 공평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문화예술 쪽 또는 사이버 쪽 디지털 쪽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지금 저 강조하는 것이 그냥 뭐 형평차원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앞으로 생산자들 길러내고 그 생산자들이 문화상품을 만들어서 어디 가겠어요? 우선 중국의 한류에 발상지가 어딘지 아시죠? 후난성 아닙니까? 후난성에 가서 후난티비를 통해서 하도록 하면 굉장히 경제적인 면도 좋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문화 쪽에서 잘되면 오히려 경제 쪽에서도 잘 될 거라는 말씀인데, 제가 지금 똑 부러진 말씀은 드릴 건 없고, 단지 이 총장께서 말씀 하셨듯이 어디 가서 저, 11억을 갖다가 몇 학교 나눠 주시려고 합니까?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런 거 안 받으셔야 그쪽에서 정신 차리고 다 이제 넣어주지 그냥 지금 뭐 뭐든 대학들이 정말 안타까워서 못 보겠어요. 그냥 돈 한 오억 십억 더 받으려고 저 취업률 높이면 더 준다고 하니까 대학들이 지금 위장 취업 보고 하는 거 아시죠?

 

3,4,월에 회사하나 만들어가지고 자기 졸업생 취직 시켰다가 5,6월에 회사 없애 버려요. 그러면 그 다음번에 3,4,월에 또한 만들고 또 취직시켰다가 5,6월에 회사 없애버리고 할 정도로 있는데, 제가 보기엔 대학이 좀 더 용감하게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도 제가 노무현 대통령 때 많이 잘 싸웠죠. 저 대학이라고 하는 것은 투자를 토양으로 하고 자율 오토너미를 공기로 해서 발전하는 기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저 과감하게 자율을 주장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총장님이 또 뒤에 가서 로비를 좀 하셔야 해요. 그래서 11억을 한 100억으로 만들고, 아무튼 제가 밖에 나가서 이런 캠페인하고 다니겠습니다. 이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또 경제적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윌리엄 보멀 교수라는 글이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하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이 정도 할까요? 고맙습니다.